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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는 날, 지방 소도시를 여행하기 여행은 보통 맑은 날을 택합니다. 햇살이 예쁘고, 하늘이 높고, 걷기 좋은 계절. 하지만 저는 이번에 반대로 선택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그중에서도 지방의 소도시를 일부러 찾아갔습니다.목적지는 충청남도 예산. 회색빛 하늘과 포근한 안갯속에서 이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우산 아래에서 마주한 골목의 얼굴도착하자마자 작은 우산을 폈습니다. 비는 멈출 줄 몰랐고, 골목 곳곳에는 낙엽과 물방울이 가득했습니다.예산 시장 뒷골목, 좁은 길을 따라 오래된 기와집이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기와지붕에 맺힌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그 아래 풍경은 잠시 숨을 멈추는 듯했습니다.소도시의 골목은 비가 오면 소리와 속도가 바뀝니다. 차량 소리는 더 멀어지고, 사람들 발걸음은 느려지고, 우산 아래.. 2025. 7. 18.
재래식 화장실이 남은 마을만 찾아간 여행 – 불편함 속의 진심 “지금도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마을이 있을까?”그 질문 하나로 시작한 여행은, 편리함이라는 기준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제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든 여정이었습니다.저는 일부러 인터넷 검색을 최소화한 채 직접 발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지역은 전라남도 구례, 경북 문경, 충남 서산. 이 마을들엔 아직도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 화장실이 남아 있었고, 그 안에는 ‘불편함 속에서 지켜지는 삶의 방식’이 있었습니다.서산 운산면, 나무문 너머의 시간서산 운산면의 작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마당 끝에 살짝 기울어진 나무문이었습니다. 문을 열자 푸세식 화장실 특유의 흙냄새와 나무틀 사이로 보이는 밑바닥의 어두움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이 마을의 김 할머니는 “요즘 아들들이 바꾸라 하는데, 이게 더 편해. 물도 안.. 2025. 7. 18.
동네 우체국 투어 사라지는 공간에 머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 누가 손 편지를 쓸까요?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여정은 동네 우체국을 직접 찾아다니는 여행으로 이어졌습니다.인터넷 속도가 모든 걸 결정하고, 클릭 한 번이면 소포가 집 앞에 오는 시대. 그 안에서 저는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고, 마음을 전하고, 무언가를 ‘직접 보내는’ 공간, 바로 우체국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느림이 머무는 건물들첫 번째로 찾은 곳은 충북 제천의 한 읍내 우체국이었습니다. 지방선거 포스터가 붙은 오래된 외벽, 손때 묻은 출입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분주한 직원들의 손놀림.그곳은 분명 현재 진행형의 공간이지만, 공기만큼은 90년대 초반처럼 느껴졌습니다.고객은 대부분 노년층이었고, 소포보다 통장 입금이나 연금 수령이 더 잦았습니다. 저는 편.. 2025. 7. 17.
SNS에 없는 맛집만 찾아가 보기 – 검색을 끊고 감각을 켜다 요즘 여행의 시작은 검색입니다. ‘○○ 지역 맛집’, ‘○○ 카페 추천’, ‘○○ 인생샷 명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같은 장소, 같은 음식, 같은 각도로 여행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그래서 저는 이번 여행에서 SNS, 블로그, 유튜브, 검색 모두를 끊고 오로지 직감, 간판, 냄새, 사람의 추천만으로 식당을 골라보기로 했습니다.이 여행의 규칙은 단 하나. 검색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길만 안내하게 하고, 맛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제로’ 상태로 떠났습니다.동네 주민에게 묻는 것이 첫 번째 맛의 기준첫 번째 도시는 전라북도 군산. 버스터미널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편의점에 들러 물을 사고 계산대 직원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여기서 밥 어디서 드세요?”그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바로 앞에.. 2025. 7. 17.
동네 택배기사님 동선 따라가 보기 (허가받은 관찰) 우리는 매일 택배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택배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손에서, 어떤 리듬으로 도착하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그래서 저는 택배기사님께 정중히 양해를 구한 후, 하루 동안 동행하며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건 단순한 ‘배송 체험’이 아니라 도시의 구조, 사람의 삶, 리듬, 그리고 일의 현장을 마주하는 여행이었습니다.아파트만 있는 동네는 아니다오전 8시, 서울 금천구의 한 물류 터미널. 택배 기사님이 차에 상자들을 옮기고 있을 때 저는 옆에 섰습니다. “차 조심하고, 절대 따라붙지 말고 뒤에서 조용히 봐요.”첫 번째 배 달지는 다세대주택 골목이었습니다. 좁고 경사진 골목에 이중 주차된 차들, 문 앞에 놓인 신문 더미와 ‘택배는 문 옆에’ 메모가 붙은 초인종들.우리는 아파트만.. 2025. 7. 16.
소리 없는 절, 대화 없는 사찰에서의 침묵 체험기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를 듣고, 너무 많은 말을 합니다. 뉴스, 음악, 채팅, 알림, 회의, 광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수십 가지 소리에 익숙해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그래서 저는 서울 근교의 작은 사찰로 ‘침묵’을 여행하러 떠났습니다. 이 여행은 장소로 가는 게 아니라, ‘내 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습니다.말하지 않는 공간은 생각을 크게 만든다제가 방문한 곳은 경기도 양평의 한 비구니 사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없고, 신도들의 방문도 드문 아주 작은 절이었습니다.입구부터 ‘침묵 수행 중입니다. 필요시 메모로 요청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있었고, 마당을 지나 스님께 손으로 인사만 드린 후 조용히 지내는 하루가 시작됐습니다.말을 하지 .. 2025.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