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공간에 머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 누가 손 편지를 쓸까요?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여정은 동네 우체국을 직접 찾아다니는 여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모든 걸 결정하고, 클릭 한 번이면 소포가 집 앞에 오는 시대. 그 안에서 저는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고, 마음을 전하고, 무언가를 ‘직접 보내는’ 공간, 바로 우체국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느림이 머무는 건물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충북 제천의 한 읍내 우체국이었습니다. 지방선거 포스터가 붙은 오래된 외벽, 손때 묻은 출입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분주한 직원들의 손놀림.
그곳은 분명 현재 진행형의 공간이지만, 공기만큼은 90년대 초반처럼 느껴졌습니다.
고객은 대부분 노년층이었고, 소포보다 통장 입금이나 연금 수령이 더 잦았습니다. 저는 편지지 하나와 엽서를 사고, 여행 중 찍은 사진 두 장을 넣어 오래 연락 없던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한 통의 편지를 적는 동안,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고 그 속에서 제 감정도 자연스럽게 침착해졌습니다.
우체국은 사람을 기억하는 장소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라남도 구례의 산동면 우체국. 버스도 하루 5번밖에 오지 않는 외진 곳에, 작은 빨간 지붕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 직원 한 분이 반갑게 인사해 주셨고 “여행 중이세요?”라는 질문으로 이 우체국이 단순한 서비스 장소가 아님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잠시 머무르며 엽서를 쓰고, 동네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우체국에서 보냈습니다.
우체국은 그 지역 주민들의 일상은 물론, 기억까지도 함께 보관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보내는 반찬 상자를,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는 엽서를 맡기곤 했죠.
사라지는 공간에서 발견한 '남아 있는 것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저는 마지막으로 중구의 충무로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숨어 있는 작고 오래된 지점이었습니다.
거기서도 저는 편지를 한 통 썼고, 도장을 꾹 눌러 찍은 뒤 빨간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사라지는 공간을 여행하는 것은 단지 과거를 좇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빠름을 향해 달리는 시대, 우체국은 여전히 ‘기다림’과 ‘전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엔 사람의 손길, 말투, 온도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빨간 우체통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담는다
우체국 여행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느린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빠른 길에선 만날 수 없는 느림의 아름다움과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 사이의 연결이 남아 있었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여행자, 엽서를 붙이는 손, 기다림을 기억하는 공간.
빨간 우체통은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