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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는 날, 지방 소도시를 여행하기

by love6967 202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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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지방 소도시 여행하기

 

여행은 보통 맑은 날을 택합니다. 햇살이 예쁘고, 하늘이 높고, 걷기 좋은 계절. 하지만 저는 이번에 반대로 선택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그중에서도 지방의 소도시를 일부러 찾아갔습니다.

목적지는 충청남도 예산. 회색빛 하늘과 포근한 안갯속에서 이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우산 아래에서 마주한 골목의 얼굴

도착하자마자 작은 우산을 폈습니다. 비는 멈출 줄 몰랐고, 골목 곳곳에는 낙엽과 물방울이 가득했습니다.

예산 시장 뒷골목, 좁은 길을 따라 오래된 기와집이 비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기와지붕에 맺힌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그 아래 풍경은 잠시 숨을 멈추는 듯했습니다.

소도시의 골목은 비가 오면 소리와 속도가 바뀝니다. 차량 소리는 더 멀어지고, 사람들 발걸음은 느려지고, 우산 아래로는 세상이 하나의 프레임처럼 걸립니다.

카페 대신 그냥 벽돌 건물 계단 아래에 앉아 비가 흐르는 지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사람은 적고 이야기만 흐른다

지방 소도시의 비는 서울에서처럼 성급하지 않습니다. 빗줄기 하나하나가 마치 누군가의 기억처럼 조용히 떨어졌습니다.

예산에 있는 작은 국밥집에 들어갔습니다. 젖은 옷에 따뜻한 국물이 스며드는 그 순간,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오늘 같은 날은 더 천천히 드셔도 돼요.” 라며 말을 건넸습니다.

평소라면 듣지 못했을 말. 비가 아니었다면 머무르지 않았을 자리.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기억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은 적었지만, 그 공간에 흐르는 ‘이야기’는 더 깊었습니다.

비는 도시를 더 가깝게 만든다

예산의 오래된 극장 간판, 무너진 벽, 벽돌 사이로 흐르는 이끼… 평소에는 스쳐갔을 디테일들이 비 오는 날엔 마치 손짓하듯 다가왔습니다.

소도시는 비에 약할 수 있지만, 그만큼 ‘속도’를 허락해 줍니다. 걷기보다는 머물기, 사진보다 관찰하기, 기록보다 감상하기.

비가 오는 날, 도시의 표정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납니다.

반짝이는 물 웅덩이 위로 지나가는 자전거, 빗소리를 벗 삼아 걷는 마을 주민들, 그리고 그 조용한 일상의 사이에 낀 여행자 한 사람.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을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는 비 오는 날 여행을 실패라 말하겠지만 저는 오히려 기억의 선명도는 맑은 날보다 더 뚜렷했습니다.

소도시는 비에 젖으면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 이야기 속을 우산을 들고 걷는 일, 비닐에 싸인 간판을 지나치며 노란 장화 신은 아이를 보는 일. 그 모든 것들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아주 조용히, 아주 깊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다음 여행도 비 오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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