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를 듣고, 너무 많은 말을 합니다. 뉴스, 음악, 채팅, 알림, 회의, 광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수십 가지 소리에 익숙해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 근교의 작은 사찰로 ‘침묵’을 여행하러 떠났습니다. 이 여행은 장소로 가는 게 아니라, ‘내 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말하지 않는 공간은 생각을 크게 만든다
제가 방문한 곳은 경기도 양평의 한 비구니 사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없고, 신도들의 방문도 드문 아주 작은 절이었습니다.
입구부터 ‘침묵 수행 중입니다. 필요시 메모로 요청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있었고, 마당을 지나 스님께 손으로 인사만 드린 후 조용히 지내는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자연히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습니다. 발소리, 바람 소리, 냄새, 온도. 생각은 크게 울리고, 감정은 더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휴대폰은 꺼두고, 메모장과 연필 하나만 들고 묵언 속을 걸었습니다. 걸을수록 조용해졌고, 조용할수록 더 많이 느껴졌습니다.
‘소리 없음’이 주는 명확한 감각
정오 무렵, 절 마당의 나무 아래에 앉아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고, 절의 지붕에서 새가 날아올랐습니다.
사찰 안에는 종도 울리지 않았고, 불경도 틀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스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죠. 아무 소리도 없다는 사실이 처음엔 낯설고 무서웠지만, 곧 그것이 명확한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위로가 ‘말’이 아니라 ‘침묵’에서 오더군요. 그 고요는 나를 설득하거나 위로하지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나를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떠나오는 길에 깨달은 것들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 날 아침 인사를 드릴 때에도 우린 여전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조용히 숙였고, 스님도 미소로만 답하셨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도시의 소음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제 안의 리듬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 침묵은 단지 ‘조용함’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우린 너무 많은 소리에 익숙해져 정작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여행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순간이 있다
사찰에서의 하루는 화려한 장면도, 특별한 사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 있음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대화 없는 공간, 소리 없는 하루 속에서 오히려 가장 분명한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침묵의 시간은 지금도 제 안에 아주 깊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