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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화장실이 남은 마을만 찾아간 여행 – 불편함 속의 진심

by love6967 202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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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화장실

 

 

“지금도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마을이 있을까?”

그 질문 하나로 시작한 여행은, 편리함이라는 기준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제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든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인터넷 검색을 최소화한 채 직접 발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지역은 전라남도 구례, 경북 문경, 충남 서산. 이 마을들엔 아직도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 화장실이 남아 있었고, 그 안에는 ‘불편함 속에서 지켜지는 삶의 방식’이 있었습니다.

서산 운산면, 나무문 너머의 시간

서산 운산면의 작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마당 끝에 살짝 기울어진 나무문이었습니다. 문을 열자 푸세식 화장실 특유의 흙냄새와 나무틀 사이로 보이는 밑바닥의 어두움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마을의 김 할머니는 “요즘 아들들이 바꾸라 하는데, 이게 더 편해. 물도 안 들고.” 라며 웃으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아니라 익숙한 삶을 지켜내는 방식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 화장실에는 분명 사람의 시간이, 오랜 생활의 습관이 남아 있었습니다.

구례 간전면, 문 뒤의 침묵

전라남도 구례 간전면의 한 외진 마을에서는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폐가에 문짝만 달린 화장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붕도 없이 허공을 향해 열린 그 공간은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을 이장님께 물으니 “예전엔 다 그랬지. 아침마다 재 퍼서 논에 뿌리고, 냄새나면 톱밥 덮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순한 구조물 하나에 ‘순환’과 ‘공존’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것, 그저 지나치기엔 너무 깊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날은 일부러 동네 슈퍼에서 라면을 사서 공터에 앉아 먹었습니다. 화장실 앞에서.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현대적인 것의 편리함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경 마성면, 남겨진 공간을 대하는 예의

경북 문경 마성면에서는 지금도 마을회관 뒤편에 재래식 화장실이 운영 중이었습니다. 기둥에 손 글씨로 쓰인 “조심하세요”라는 문구가 마치 그 공간에 들어설 때 갖춰야 할 ‘예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곳은 단지 볼일을 보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공유하는 장소였습니다. 물건 하나, 문 닫는 소리 하나에도 타인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담겨 있었죠.

그 화장실 앞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을 아이가 지나가다 “서울에서 왔어요?” 묻더군요. “응, 그냥 이 화장실이 신기해서...” 우린 같이 웃었습니다.

불편함 속에 남겨진 마음들

재래식 화장실이 남아 있는 마을을 찾아간 이 여행은 편리함을 되묻는 질문이자, 공간에 담긴 인간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되짚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좋은 것’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바꾸고 지워버립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공간 안엔 지금은 보기 힘든 진심, 생활의 정직함,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엔 ‘편리하지 않은 장소’를 먼저 선택해 보세요. 그 속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생각보다 더 크고 깊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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