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고 나니, 새로은 만남은 점점 없어지고 기억은 더 자주 짙어집니다. 그런 우리 셋이 다시 모인 건 작년 가을. 술을 마시다 나온 이야기 하나가 차박 캠핑가자는 쪽으로 결정이 됐고, 그 여행은 예상보다 훨씬 강렬하고 조용한 파문을 남겼습니다. 이 글은 제가 40대 친구들과 다녀온 바닷가 차박 캠핑을 다녀온 솔직한 여행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안엔 불빛, 추억, 바람, 그리고 잊고 있던 웃음들이 담겨 있습니다.
맥주 두 잔에서 시작된 계획 (차박)
“요즘 차박 유행이래.” 친구 한 명이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나서 한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냥 흘려 들을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에 끌렸습니다. 어느새 나도 입을 열었고, 다른 친구까지 셋이서 다 같이 “그래, 한번 해보자” 하고 박수를 치며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장비도, 노하우도 없었습니다. 다만 오래된 SUV 하나와, 낡은 돗자리, 그리고 ‘괜찮겠지’라는 무한 긍정적인 생각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날, 우리는 충남 보령 근처의 조용한 바닷가를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일부러 캠핑장이 아닌, 지도에 이름조차 안 나오는 소박한 포구 근처였습니다. 뒷좌석을 접고 담요 몇 장 깔고, 의자 두 개 꺼내 놓은 게 전부였지만, 이상하게 부족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우린 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잠깐 빌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됐습니다.
뜨겁고 따뜻했던 파도 소리 (바다)
밤 10시쯤, 바람이 매우 차가웠습니다. 바닷바람은 가을의 깊이를 더해 줬습니다. 모닥불 대신 랜턴 하나를 켜 놓고, 우린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돌렸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었는데,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좋았습니다. 친구가 갑자기 카세트 라디오를 꺼냈습니다. 아직도 그런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거기서 흘러나온 노래는 20년 전 우리가 처음 함께 들었던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이었습니다.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노래 아직도 기억나냐?” “야, 이거 듣고 첫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바닷가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고 감성적으로 느껴질 줄 몰랐습니다. 불빛 없는 바다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꺼내어놓았고, 옆에서 조용히 꺼내진 추억들이 서로에게 닿기 시작하면서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습니다. 그 파도 소리는 어쩌면 우리 세 사람의 마음 안쪽까지 도달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밤과 웃음 (추억)
캠핑의 재미는, 어쩌면 ‘불편함 속의 느긋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장실은 없었고, 새벽엔 모기가 이불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 어느 호텔보다 아늑하고 포근했습니다. 아침에는 친구가 편의점에서 사 온 굴비를 휴대용 버너에 구워서 먹었습니다. 고소한 냄새에 갈매기가 한두 마리씩 흥분하기 시작했고, 친구는 “야, 우리 캠핑 다큐 찍자”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포커스도 안 맞고 소리도 잘 안 들리는 그 영상은, 지금도 내 폰에 저장돼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셋 다 말이 없었습니다. 음악도 틀지 않았고, 창문을 열어 바람만 맞았습니다. 그런 침묵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편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알고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건 어쩌면 ‘끝’이 아닌 ‘남겨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또, 우리는 이 바다에 돌아올 것입니다. 똑같은 SUV에, 더 낡은 담요를 들고서 말입니다.
40대의 캠핑은 젊음의 열정이 아닌, ‘기억의 정리’에 더 가까웠습니다. 친구들과 보낸 그 하룻밤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무척 단단하게 제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의 차박은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을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바람 부는 계절에 친구들과 차 한 대 몰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한번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그 여행은 기록이 아닌,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