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만 먹고 돌아오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이 여행의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고, 그저 밥을 먹는 시간에만 집중하는 고요한 식사 여행.
많은 사람에게 여행은 ‘보는 것’과 ‘남기는 것’이 중심이지만 저는 이번엔 ‘씹는 것’, ‘느끼는 것’, ‘채우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단순하지만 생각보다 깊은 이 여행을 나눠보려 합니다.
식당을 정하는 기준 - 메뉴 말고 분위기
여행지는 전주. 볼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많은 도시지만 이번엔 오로지 ‘밥’만이 목적이었습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면서도, 메뉴보단 ‘조용히 혼자 앉아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을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결국 찾아간 곳은 한옥마을 외곽에 위치한 작은 백반집. 간판도 작고, 블로그 리뷰도 거의 없는 곳이었지만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한 공기,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무심하게 틀어져 있는 라디오 소리까지도 모두 이 여행의 목적과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휴대폰은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식사만을 위한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조용히 씹는다는 행위가 주는 위로
백반은 정갈하게 나왔습니다. 밥 한 공기, 된장국, 나물 셋, 김치, 생선구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천천히 씹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선 많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요즘 내가 먹는 건 정말 ‘식사’였나? 카페에서 마신 샌드위치와 테이크아웃 도시락이 정말 나를 ‘채운’ 것이었을까?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외로운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었습니다. 젓가락질 속도, 국물 넘기는 리듬, 심지어 물을 마시는 순간까지 모두가 느리고 충만했습니다.
그 누구도 평가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건 나만의, 나를 위한 식사였으니까요.
고요한 식사 이후엔 마음이 더 배불렀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허기를 채운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더 채워진 듯한 포만감이 있었습니다.
배부름이 아니라, 그동안 미뤄뒀던 나 자신에 대한 인정과 여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단지 밥 한 끼를 천천히 먹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하루는 충분히 가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여행은 계획도, 관광도, 사진도 없었지만 식사라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삶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혼자 밥 먹는 식사가 아닌 혼자의 만찬
‘혼밥’이라는 단어엔 왠지 쓸쓸함이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제가 느낀 건 혼자의 식사는 가장 깊은 만찬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밥을 먹는 하루. 그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언젠가 한 번쯤 고요한 식사 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냥 밥만 먹고 와도, 그 하루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