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흔적이 사라진 그곳에는 멈춰진 시간만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운행이 중단된 기차역인 폐역은 그런 정적의 발원지입니다. 정적이 흐르는 그 공간 안에서 저는 뜻밖에도 생생한 감정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끓긴 폐역 기차역만을 선택해서 하나씩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여행이 되리라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름하여 '유럽여행' 지금부터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공간 속에서 제 발걸음으로 되짚어본 즐겁고 재미있는 여행으로 떠나 보시겠습니다.
1. ‘기차가 멈춘 자리’ – 폐역 기차역이 주는 낯설고 아름다운 정적
‘여행’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반대의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편입니다. 수많은 블로그가 추천하는 활기찬 명소 대신, 지도에서 더는 노선이 보이지 않는 ‘폐역 기차역’을 여행지로 삼았습니다. 그 시작은 충북 제천의 ‘청풍역’이었습니다. 폐역이지만 플랫폼 구조물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어, 마치 1980년대 기차를 기다리는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녹슨 철로 위로 부서지는 낙엽 소리, 때때로 멀리서 들리는 진짜 열차의 굉음, 정적 속에서 듣는 바람 소리가 이곳의 ‘멈춤’을 더욱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청풍역은 문화재로 복원된 일부 역들과 달리 거의 손대지 않은 모습이어서 좋았습니다. 오히려 방치된 풍경이 여행지로서 더 완성되어 보였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저는 ‘소리 없는 공간’에서 인간의 흔적과 정서를 더 깊고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폐역은 멈췄지만, 그 자리의 기억과 시간은 여전히 생생했습니다.
2. 유령이 된 플랫폼에서 마주친 나
충북선의 옛 라인을 따라가며 ‘쌍룡역’과 ‘봉양역’도 들렀습니다. 봉양역은 폐역이긴 하나, 최근까지 일부 열차가 정차했던 이력이 있어서 구조물이 아직까지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선 철로를 따라 걸으며 한참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출입금지 구역은 잘 지키면서, 진입 가능한 구간을 걸었습니다. 유령여행의 백미는 바로 ‘플랫폼 걷기’입니다. 누구도 없는 플랫폼, 아무 기차도 도착하지 않을 시간표, 오직 나만 서 있는 공간. 이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스쳐 지나갔던 고민, 결정, 생각들이 눈앞에서 정지화면처럼 떠오르기도 하고 별일 아니었던 소소한 일들이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쌍룡역의 낡은 시계탑 아래에 앉아 바라본 풍경은 기억에 남았는데 열차는 없어졌지만 레일은 그대로였고, 덩굴이 뒤덮은 의자 하나가 플랫폼 끝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위에 앉아 가만히 시간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냥 ‘존재하는 공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회복될 수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3. 폐역 유령여행, 특별한 경험
이 여행은 단순히 폐역이 된 낡은 기차역을 보는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에게 호기심과 질문을 던지고, 공간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떤 폐역은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어, 철조망 밖에서 멀리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도달할 수 없음 ’조차 여행의 일부였습니다. ‘운행이 멈춘 곳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기존 여행 콘텐츠에서 찾기 어려운 경험이고 느낌입니다. 여행은 항상 새로운 것을 보는 데 있다고 생각했지만, 때론 이미 ‘끝난 장소’에서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유령여행은 인스타그램에 공유할만한 신선한 사진은 거의 없지만, 글과 기억, 그리고 생각의 깊이를 담기엔 정말 충분했습니다. 폐역이라는 공간은 어느 누구의 방해와 간섭 없이 ‘나만의 속도’로 걷게 해 줍니다. 이것이 제가 유령여행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철길이 끊긴 곳에서, 생각은 더 멀리 이어지고 확장되니까 말입니다.
폐역을 찾아 떠나는 유령여행은 조용하고, 느리고, 낯설고, 때론 불편하지만 그 안에만 존재하는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 있습니다. 저처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아무 기차도 오지 않는 폐역으로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