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변해도 기억은 그대로였다.
여행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새로운 걸 보기 위한 여행, 그리고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다시 찾기 위한 여행. 이번에는 후자였습니다. 기억 속 어렴풋한 풍경을 다시 만나기 위한 여행. 어릴 적 가족과 함께 갔던 시골 마을,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그 거리, 그리고 첫사랑과 손을 잡았던 강변길. 그곳들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재방문이 아닌, 지나간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억은 흐리지만, 길은 그대로였다
고등학교 시절 매일 등굣길로 걷던 골목이 있었습니다. 햇살이 기울던 아침의 냄새, 자전거 바퀴 소리, 그리고 매일 마주치던 빵집 아주머니의 미소.
그 길을 다시 걸어봤습니다. 빵집은 사라졌지만 붉은 벽돌 건물은 그대로 있었고, 길가의 감나무는 여전히 가지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기억은 흐릿했지만, 풍경은 묘하게 그때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 골목을 걷는 동안, 나는 잠시 10대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고 지금의 내가 그 시절 나를 다독이는 듯한 따뜻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함, 이제야 보이다
어릴 적 여름마다 가던 외갓집 근처 냇가. 한참 물장구치며 놀던 그곳은 이젠 산책로로 정비돼 있었습니다. 시멘트 계단과 안내 표지판이 생겼지만 물이 흐르는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나무 그늘은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놀라운 건, 어릴 땐 단지 '노는 곳'이던 그 장소가 지금은 ‘마음이 식는 곳’으로 느껴졌다는 겁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느끼는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이 여행의 가장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혼자 떠나도, 결코 외롭지 않은 여행
이 추억 여행은 혼자 떠났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엔 과거의 내가, 그리고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공간에도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같은 벤치에 앉아 눈을 감으면 그 시절 웃음소리와 울먹임까지도 다시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여행은 SNS보다 제 마음속 앨범에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잊고 지낸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
추억 따라 떠나는 여행은 단지 과거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간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만 달리지만 가끔은 잠시 멈춰,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는 것도 삶의 중요한 여정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혹시 마음속에 오래된 골목, 작은 다리, 잊힌 거리 하나 있다면 언젠가 조용히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세요. 그곳엔 어쩌면 지금의 당신보다 더 선명하게 웃던 옛날의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