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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벽화’만 보고 다닌 하루

by love6967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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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벽화

 

여행은 꼭 유명한 관광지를 가야만 의미 있을까요? 저는 어느 날 ‘벽화’만을 따라 하루를 보내보았습니다. 낡은 골목의 작은 그림들, 색감이 바랜 벽 속의 메시지들. 그날의 여정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가장 깊고 조용하게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아침: 관광 대신 골목을 택하다

서울 홍대 근처의 익숙한 거리. 친구들은 유명 브런치 카페에 줄을 서 있었지만, 저는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목적지는 단 하나, ‘벽화’. 지도 앱도 끄고,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웠죠. 벽 하나, 철문 하나에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한 담벼락엔 커다란 고양이가 턱을 괸 채 누워 있었고, 그 옆엔 ‘너 오늘 좀 멋져’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저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언제 그려졌을까? 이 글귀는 누구에게 남긴 말일까?’ 낡은 골목의 벽화들은 마치 그 지역의 손글씨 같았습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남긴 감정의 흔적처럼 다가왔습니다.

낮: 벽화가 만든 도시의 표정

그날 저는 연남동을 지나 성수동까지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목적은 변함없이 벽화. 성수동의 어느 창고 거리에는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과 함께 붉은 실선으로 연결된 인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은 단순했지만, 그 메시지는 꽤 묵직했습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보다, 조용히 손을 뻗어 그림을 쓰다듬는 어르신의 모습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벽화는 단순한 낙서나 예술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동네의 공기,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했던 위로의 형태로 남아 있었죠. 이날의 여행은 지도나 안내판이 아니라, 벽화를 따라 이어졌습니다. 그림이 있는 곳엔 사람들이 있었고, 그 곁엔 시간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밤: 낡은 벽 앞에서 내 안을 마주하다

해가 질 무렵,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이화동 벽화마을. 한때 SNS 명소였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가보니 유명했던 벽화 중 절반 이상은 훼손되거나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거기서 가장 깊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지워진 흔적들, 벽 사이사이 남겨진 희미한 색감들이 오히려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거든요. 그림이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는 자국, 약간의 붓 자국조차도 누군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죠. 그 벽 앞에서 저는 문득,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도 찍지 않고, 그냥 앉아 조용히 바라봤습니다. 그 벽화는 제게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그 하루는 제 여행 중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벽화만 따라다닌 여행.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저에겐 새로운 시선의 전환이었습니다. 여행은 꼭 멀리 가지 않아도, 비싸지 않아도, 계획되지 않아도 됩니다. 낡은 벽 위에 그려진 조용한 그림 하나가 어떤 날엔 당신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다음 여행 땐 지도보다 벽을 한번 올려다보세요. 그 안엔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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