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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후 아무 계획 없이 떠난 역순 여행, 끝에서 출발하기

by love6967 2025.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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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후 혼자 걷는 역순 여행

 

이별 후, 저는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여행이 필요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장소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여행을 해보자고 생각하고 그렇게 저는 ‘역순 여행’을 떠났고, 그 끝에서 나를 다시 만났습니다.

1. 여행의 시작을 ‘끝’에서부터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저는 그 흔들림 속에서 방향을 잃었습니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누구의 조언도 마음에 닿지 않았습니다. 위로도, 충고도, 피로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기로 했습니다. 단, 일반적인 방식은 싫었습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고, 뭘 보고 오는 여행은 그저 스케줄을 채우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여행지를 정하고 동선을 짜는 게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머물고 싶은 장소를 먼저 정한 후, 그곳에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여행 말입니다. 마지막 도착지로는 강릉 안목해변 근처 작은 카페를 선택했습니다. 한때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곳이었고, 결국 혼자 오게 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아침 9시쯤 도착해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바람이 꽤 불고 있었지만, 그 바람마저 저를 감싸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오기 전의 해변은 텅 비어 있었고, 그 공간 속에서 오히려 제 감정은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행 내내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숙소 예약도 없이, 그날그날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며, 매 순간을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선택했습니다.

2. 기억을 거꾸로 재생하며 걷는 법

안목해변에서 하루를 보낸 뒤, 저는 하루씩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이어갔습니다. 두 번째 목적지는 정동진이었습니다. 원래 여행이라면 보통 강릉에서 정동진을 향해 ‘가는’ 일정이지만, 저는 반대로 정동진에 ‘돌아갔습니다’. 정동진은 철길과 바다가 나란히 이어지는 곳입니다. 저는 그 길을 따라 조용히 걷기만 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혼잣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생각도 판단도 하지 않고, 그저 “지금”에만 머물렀습니다. 재미있게도, 과거를 잊기 위해 간 여행이었는데, 과거를 ‘거꾸로 밟아가는’ 동안 오히려 과거를 덜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정동진에서는 오래된 여관에 묵었습니다. 인터넷도 없고, TV도 없는 공간. 창문을 열면 바로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다가 잠들고, 그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그 하루가 저에게는 깊은 내면의 침묵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다음 날은 양양으로 이동했습니다. 계획이 없었기에 구체적인 목적지도 없었습니다.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우연히 찾은 국숫집에서 따뜻한 잔치국수를 먹었는데, 그 국물 맛이 이상하게 따뜻했습니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았던 순간이었습니다.

3. 끝에서 시작으로, 나를 되감는 과정

역순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제가 출발했던 서울이었습니다. 출발이 아니라 ‘마무리’의 장소로서 서울을 다시 바라보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저는 여행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글도 쓰지 않았고, SNS에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번 여행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저 자신을 되찾기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변화도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감당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 역순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서 거꾸로 걸어보는 것도 치유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행이 저를 완전히 치유해 준 건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히,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용기를 남겨주었습니다. 말없이 걸은 거리들, 눈 맞은 바다, 묵었던 여관방의 온기, 그 모든 것들이 제 마음 어딘가를 천천히 덮어주었고, 마침내 저는 “괜찮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순 여행은 계획 없는 방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되찾는 조용한 방법이었습니다. 끝에서 출발한 여정 속에서, 저는 제 감정의 잔해를 하나씩 되짚었고, 그 속에서 비로소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이별, 실망, 혹은 무력감에 갇혀 있다면, 꼭 멀리 가지 않더라도 거꾸로 걷는 여행을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뒤로 걸을 때 더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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