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숙소는 호텔도, 민박도, 캠핑장도 아닌… 진짜 농촌의 비닐하우스였습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말하겠지만 누군가에겐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저는 충남 부여군의 한 마을에서 농번기 중간에 비워진 임시 숙소용 비닐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지내보았습니다.
이 체험은 단순한 숙박이 아닌, 비닐하우스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온도, 소리, 냄새, 빛을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이었습니다.
‘있어도 없는 공간’, 비닐하우스는 잠잘 수 있는가?
처음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농사짓는 지인이었습니다. “너 글 쓰니까, 우리 비닐하우스에서 하루 자고 가봐.” 그 한마디에 저는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충남 부여의 작은 농촌 마을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비닐하우스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반투명 아치형 비닐 천막’ 구조 그대로였습니다. 다행히 내부는 작게 구획을 나눠 작업용 쉼터로 쓰이던 공간이었고, 전기 콘센트, 소형 선풍기, 작은 조명이 있었습니다.
바닥엔 보온매트가 깔려 있었고, 창문은 없지만 사방이 반투명이라 밖이 훤히 보였죠.
그 공간은 잠잘 수 있었지만, ‘집’이라고 하기엔 확실히 낯선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이, 여행의 이유가 되어 주었습니다.
모기와 새소리, 그리고 사람 냄새
밤이 되자 외부 조명은 꺼지고, 비닐하우스 안은 아주 희미한 전등 하나만이 켜졌습니다. 열은 천장 쪽으로 빠지고,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풀벌레 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했죠.
모기는 몇 마리나 들었는지 셀 수 없었고, 창문이 없으니 자연 환기는 되지만 자연 그대로의 ‘공기’가 방 안을 채웠습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그 소리들이 오히려 도시에서는 듣지 못하던 평온함을 주었습니다.
새벽 3시쯤엔 비닐하우스 천막 위로 빗방울이 탁탁 떨어졌고, 그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백색소음처럼 들렸습니다.
모든 것이 불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 있는 공간’의 감각은 오히려 뇌와 마음을 깨우는 느낌이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여행에서 배운 것들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그 공간에 대한 의미를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농민에게 비닐하우스는 작물을 지키는 집이자, 비 오는 날 피할 수 있는 지붕이자, 고단한 하루 끝에 쉴 수 있는 쉼터였습니다.
내가 잔 그 공간은 누군가의 농사 도구가 있었고, 어떤 날엔 그 안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으며, 어떤 날엔 비를 피하기 위한 휴식처가 되었겠죠.
우리가 여행에서 ‘깨끗하고 정돈된 곳’만을 찾는다면 이런 공간은 영영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에서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장 불편한 숙소에서 가장 깊은 밤을 보냈다
비닐하우스에서의 하룻밤은 더웠고, 습했고, 벌레도 많았지만 그 어떤 호텔보다 살아 있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삶이 일어나는 장소에 내 하루를 조용히 경험해 보는 것은 책으로도, 사진으로도, 유튜브로도 대체할 수 없는 진짜 여행이었습니다.
다음엔 또 묵겠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 쉽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의 온도와 소리는 아마 오래도록 제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