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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밖만 보기 여행 – ‘내리지 않아도 도착하는 여행의 풍경’

by love6967 202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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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밖만 보기 여행

 

여행이라고 해서 꼭 어딘가에 내려야만 하는 걸까요? 내리지 않아도, 어디에 도착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창문 밖 풍경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서울 시내버스 노선을 무작위로 골라 종점까지 내려보지 않고 단지 ‘타고 바라보기만’ 하는 여행을 시도해 봤습니다.

그건 목적 없이 떠난 여행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지나쳤는지를 느끼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의 시작은 “승차” 한 번으로 충분했다

주말 아침, 특별한 계획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휴대폰으로 가장 가까운 정류장을 검색한 뒤, 곧 도착 예정인 7016번 버스를 탔습니다. 이 버스는 강북과 강남을 지나, 한강을 건너, 고속터미널까지 이어지는 긴 노선이었습니다.

자리 하나에 앉아 아무런 알림도 켜지 않은 상태로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풍경이 흘러가는 대로 눈을 맡겼습니다.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리고 타고, 가게 간판이 바뀌고, 차선은 하나씩 줄어들고 늘어났습니다. 아무도 내 목적지를 묻지 않았고, 저도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창문은 가장 조용한 다큐멘터리 스크린이었다

버스 창밖에는 매일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와 달랐던 건 이번엔 목적이 없으니, 속도도 시선도 다르게 느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느 동네에선 아침부터 문을 연 국밥집 앞에 연기가 피어올랐고, 어느 횡단보도에서는 할머니가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건너고 있었습니다.

골목을 지날 땐 벽에 붙은 오래된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고, 그 옆 주차된 자전거에는 “고장 났어요. 수리하러 갑니다 :)”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죠.

버스라는 공간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이 나를 통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용한 시선으로, 삶을 구경하는 일종의 창문 속 관객이 되어 있던 시간이었어요.

목적지가 없어야 얻는 마음의 여유

한강을 지나는 구간에 이르자 햇살이 물 위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습니다. 창문에 기대앉아, 음악도 없이 그저 그 반짝임만 바라보는 일은 최근 몇 년간의 어떤 여행보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여행지에 도착하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죠. 찍어야 할 사진, 먹어야 할 음식, 리뷰에 남겨야 할 평가.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자유로웠습니다.

누군가의 일상이 내 눈앞을 흘러가는 동안 저는 제 삶의 속도를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었고, 도착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 존재한다는 걸 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세상은 타는 만큼 보인다,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버스 창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훌쩍 지나갑니다. 그건 도착하지 않는 여행이 아니라, 오히려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아 더 풍요로운 여행이었습니다.

버스 안의 나는 타인의 삶을 지켜보는 관찰자였고, 나 자신과 대화하는 묵언의 여행자였습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번거로움이 부담스럽다면, 한 번쯤은 “창밖만 보기 여행”을 떠나보세요.

도시의 리듬,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 생각들까지 한 번에 스쳐 지나가는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여정이 거기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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