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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과 일상의 경계에서 – 분쟁 지역을 걷는 여행자의 기록 (조지아-압하지야, 인도-파키스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by love6967 202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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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파키스탄 군중의 모습

 

“그곳은 위험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로 느낀 건, 그 질문보다는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라는 말이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분쟁 지역은 뉴스에선 항상 총성과 연기로만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밥을 짓고, 아이를 키우고, 빵을 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저는 조지아-압하지야,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세 곳의 국경 분쟁 지역을 직접 걸으며, '분쟁'이라는 단어로 가려졌던 수많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조지아와 압하지야의 비공식 국경을 넘으며

트빌리시를 떠나 압하지야 경계로 향하는 길은 묘하게 고요했습니다. 이른 아침, 제가 탄 승합차는 바람 소리만 남긴 채 조용히 북쪽으로 달렸습니다. 압하지야는 국제적으로 조지아의 영토로 인정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경계 지역에는 공식 국경이 없고, 잉그리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사실상의 '국경선' 역할을 합니다. 제가 그 다리를 건넜을 때, 주변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도로는 더욱 거칠어졌고, 건물 외벽엔 오래된 전쟁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휴대폰의 조지아 신호가 끊기면서 현실적으로 ‘다른 나라’에 들어왔다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압하지야의 수도 수후미는 오래된 소련식 건물이 즐비한 곳이었습니다. 도시가 낡고 정체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해변엔 낚시하는 노인들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소년들이 있었고, 시장 안에서는 생선과 채소가 활발히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현지 가이드의 도움으로 내전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벽에 걸린 희미한 사진들, 낡은 군복, 그리고 희생자 가족들의 편지. 전쟁은 끝났지만, 기억은 아직도 매일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는 “여긴 정치를 말하면 안 돼요. 그냥 사람을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현지인들은 분쟁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일상의 평온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습니다.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 총구를 지나 핑크빛 호수로

두 번째 목적지는 인도령 카슈미르의 중심 도시 스리나가르였습니다. 카슈미르는 오랫동안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 지역으로 유명하며, 무장 세력과 정부군 사이의 충돌이 자주 발생하는 곳입니다. 제가 스리나가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 내부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완전한 군사 통제 상태였습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는 길에도 수십 명의 군인이 경계 중이었고, 곳곳에 검문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 중심부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다르 호수 위에 떠 있는 하우스보트들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아침 시장에서는 수상보트를 타고 꽃과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우스보트에서 며칠을 지내며 현지인 아심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총성은 뉴스에만 나와요. 우리는 매일 생계를 위해 움직이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요. 외부에선 우리가 전쟁터에 사는 줄 알지만, 우리는 그냥 삶을 사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제게 강한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하루는 그와 함께 산악 지대를 넘어 외곽 마을까지 다녀왔습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차와 과자를 내주며 저를 맞이했습니다. 사람들은 외지인이 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반갑게 대해줬고, 전통 무늬가 새겨진 카펫 짜는 공방도 보여줬습니다. 분쟁 지역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안전을 위한 조건은 명확합니다. 방문 시기는 군사적 충돌이 없는 시기를 택하고, 반드시 지역 가이드와 동행해야 하며, 주요 도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기본 수칙만 지킨다면, 카슈미르는 아름답고 따뜻한 여행지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 검문소를 통과하며 본 두 개의 현실

마지막 여정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이자, 정치적 긴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제가 베들레헴으로 향할 때, 중간에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버스를 세우고, 모든 승객의 여권을 확인하며 엄격한 검문을 진행했습니다. 당시에는 긴장감이 돌았지만, 실제 절차는 조용하고 질서 정연했습니다.

검문소를 지나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거리엔 아랍어 간판이 가득했고, 상점에서는 향신료와 빵 냄새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현지 청년 자카리아의 안내로 벽화가 그려진 난민 캠프와 한 제과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우린 관광객이 올 때마다 기뻐요.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기회니까요. 이 지역이 평화롭지 않다고만 보지 말아 주세요. 여기에도 꿈이 있고 웃음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이스라엘 쪽 검문소 근처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은 “우리는 늘 팔레스타인에서 위험이 온다고 배워요. 그런데 당신이 거길 다녀왔고, 괜찮았다고 하니... 좀 혼란스럽네요.”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서 분쟁의 또 다른 본질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단절’이었습니다. 실제 삶보다 훨씬 더 강한 ‘두려움’이 서로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자였던 내가 양측 모두에서 환영받았다는 사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그 어떤 경계도 녹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분쟁 지역은 여행할 수 있는가?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분쟁 지역은 위험하지 않나요?” 물론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제가 다녀온 세 곳 모두, 일정한 규칙과 정보만 지키면 충분히 안전하게 여행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청의 자세'입니다. 이곳들은 단순히 사진을 찍고 떠나는 곳이 아닙니다. 정치적 편견 없이 그들의 말을 듣고, 음식을 나누고, 시선을 맞추는 것이 진정한 여행자의 자세입니다.

조지아에서 본 무너진 기찻길 위의 꽃, 카슈미르의 하우스보트 안에서 마신 뜨거운 차, 베들레헴 시장에서 들었던 웃음소리. 이 모든 순간은 제게 “분쟁”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선 하루가 지나고, 해가 지며, 또 누군가는 소박한 빵을 굽고 있을 겁니다.

분쟁 지역은 위험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바라봐야 할 '인간의 자리'입니다. 다음에 여행을 계획할 때, 용기 있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요? 국경 너머에는 언제나 또 다른 삶의 온도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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