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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더위, 바다로 피서 (온열, 물놀이, 쉼)

by love6967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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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주문진 해변

 

2025년 여름, 저는 역대급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력했던 폭염 속에서 도시를 벗어나 바다로 향했습니다. 에어컨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끈적한 열기,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냄새, 그 모든 것에서 도망치듯 짧은 바다 피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단순히 시원한 바닷바람만을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정신적 여유와 물리적 쿨링, 둘 다 절실했던 순간이었기에 더더욱 바다는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첫날, 계획 없는 도피가 여행이 되다

서울에서의 기온은 이미 37도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집에만 있어도 열대야 같은 실내 공기 때문에 쉽게 지쳤고, 작은 움직임에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감고 말리기조차 싫어졌던 어느 오후, 저는 미련 없이 짐을 꾸렸습니다. 계획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바다로 간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제가 향한 곳은 강원도 주문진 근처의 외곽 해변이었습니다. 검색창에 흔히 뜨는 유명 해수욕장이 아닌, 조용하고 사람 적은 바다를 찾고 싶었습니다. 강릉역에 도착한 후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마지막엔 택시로 15분 정도 더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해변은 상호명도 지도에 잘 안 잡히는 곳이었지만, 파도 소리와 모래의 결이 생생히 느껴지는 아주 평화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도 아니고, 무인 운영 중인 작은 독채였습니다. 체크인도 셀프였고, 주인은 전화로만 간단히 응대를 해주셨습니다. 더위를 피해 들어간 방 안은 창문을 통해 바로 바다가 보이는 구조였고,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해풍이 드나들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듣는 그 순간, ‘아, 여기 잘 왔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익숙한 물놀이가 낯설게 느껴졌던 시간

이튿날 오전엔 조금 이르게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아직 햇살이 강하지 않을 시간대라 모래도 뜨겁지 않았고, 물속은 생각보다 차가웠습니다. 저는 물놀이를 일부러 오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은 그늘막 하나를 펴고 그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가끔 물에 발을 담그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바다에 오면 흔히 생각하는 튜브, 수영복, 물총 같은 요소 없이도 충분히 시원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근처 해산물 가게에서 산 작은 회덮밥과 생수 한 병, 그게 점심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SNS용 사진을 남겼겠지만, 이번에는 핸드폰도 거의 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무심함이 이 여행을 더 집중 있게 만들었습니다.

재미있던 건, 모래 위에 남겨진 갈매기 발자국과 파도에 쓸려 온 작은 유리 조각들을 보며, 혼자서 의미 없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원함이 단순히 온도를 낮추는 게 아니라, 머릿속을 비워주는 작용도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말 그대로 '생각이 식는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시간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바다는 더 조용해졌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바다색도 달라졌습니다. 뜨거웠던 햇빛이 물러가고 나니, 그제서야 파도가 더 부드럽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야 처음으로 바다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물속은 낮보다 훨씬 차가웠고, 몸이 단단히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에 둥둥 뜬 채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름과 해무가 번지듯 퍼지고 있었고, 고요 속에서 들리는 건 파도와 제 숨소리뿐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근처 카페에 들렀습니다. 낡은 나무 바닥과 선풍기만 있는 그곳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셨습니다. 밤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잤습니다. 도시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해풍 덕분인지 모기조차 없었고, 한밤중에도 바람이 불어와 이불을 덮고 자야 할 정도였습니다.

뜨거운 여름, 가장 시원했던 기억

이번 여행은 길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1박 2일이었고, 계획도 없었고, 유명한 장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느 여름휴가보다 훨씬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폭염이 단순히 '더운 날씨' 이상의 피로를 안겨주는 시대에, 저는 잠시나마 바다로 도피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선택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단순히 체온을 낮추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고, 특히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다로의 도피는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저에게 가장 효과적인 '쉴 줄 아는 방법' 중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에어컨, 선풍기, 카페 냉방도 좋지만, 바닷바람에 식히는 여름의 한 장면은 분명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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